2026.10.15

틀릴까 봐, 4개월을 헤맸어요

자석과 나사를 넣어 본 회색·검정 시제품 손잡이

디자인은 나왔고, 이제 이걸 실제로 찍어낼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했어요. 이걸 '구조 설계'라고 합니다. 리벳은 어디에 몇 개, 자석은 얼마나 깊이, 날은 몇 mm로 하는 걸 정해야 했습니다.

과거 IT에서 진행한 설계는 기획 후 화면을 고치는 데 하루면 됐어요. 그런데 여기선 한 번 잘못 정하면 금형을 다시 깎아야 했고, 그건 몇 주의 시간과 몇백만 원 단위의 비용이 드는 일이었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해서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그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과 함께 아주 꼼꼼해졌습니다. ㅠㅜ

첫 설계 업체에서 받은 마지막 메일(이름은 가림)
나의 과한 불안은 너무나 많은 요구/확인사항을 불러왔어요 ㅠㅜ

그렇게 첫 번째로 설계 전문가분을 만났고 미팅도 좋았어요. 제가 고집한 리벳 구조가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도 그때 배웠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불안해졌어요. 수정은 몇 번까지인지, 언제를 '완료'로 보는지, 전부 계약서에 적어두고 싶었어요. 빨간 글씨로 고친 계약서를 보내고, 이견이 생기자 긴 메일을 또 썼죠. 결국.. 과한 확인과 요청에 업체가 진행을 포기하게 됐어요. 메일이 너무 길어서 요지를 모르겠다는 답장과 함께요 ㅠㅜ

두 번째 설계자분과는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만 진행했어요. 이번에도 저는 요구사항을 길고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냈고, 그다음은 거의 기다림이었어요. 뭔가 사정이 있었던 건지 약속된 날에 연락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앞에서 과한 요구로 일이 틀어졌던 경험 때문에 불안한 채로 그저 기다렸어요. 그렇게 한 달 반 만에 받은 결과물엔 제가 제일 확인하고 싶었던 것, 부품이 어떻게 맞물리고 어디까지 버티는지가 없었어요. 솔직히 그땐 정말 화가 났었습니다 ㅜㅠ 결국 여기서도 계약을 종료하며 멈췄어요.

네 가지 색 디자인 렌더링
완성된 디자인 렌더링, 이걸 들고 4개월동안 헤맸어요 ㅠㅜ

2월에 처음 의뢰 메일을 보냈는데, 5월이 되도록 구조 설계는 한 장도 남지 않았고 일정은 계속 밀렸어요. 돌아보면 저는 도면 위에서 모든 걸 미리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틀리는 게 무서워서요.

그러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태도를 바꿨어요. '정확하게 설계하자' 대신 '일단 만들어보자'로요.

3월에 잠깐 만났던 목업 제작소가 있었어요. 그때 대표님이 "디자인 나왔으면 그냥 만들면 될 것 같은데요?" 하셨는데, 그땐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렸어요. 불안할 땐 그런 말이 잘 안 들리더라고요. 5월 20일, 그곳에 다시 연락해서 설계 대신 실제로 조립되는 '워킹 목업'을 부탁했어요.

그리고 2주 뒤인 6월 초, 드디어 첫 목업이 나왔어요.

펼쳐 놓은 빨간 워킹 목업 손잡이 두 장과 날
조립한 빨간 워킹 목업
몇 개월 만에 나온 실물을 보고 신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ㅋㅋㅋ

처음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제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설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손에 쥐니까 뭘 해야 할지가 보였어요.

자석은 얼마나 세야 할까? 덮는 플라스틱이 두꺼워지면 자력이 약해지는데, 그럼 자석 크기는? 리벳은 나사로 할까, 진짜 리벳으로 할까? 양산엔 리벳이 맞는데, 그러려면 기계를 또 사야 하는데? 날의 구멍은 어떻게 뚫지? 나사 말고도 플라스틱을 붙잡아줄 기둥이 필요할까?

목업 사진을 보낸 카카오톡 대화
와디즈 PD님에게 목업 나왔다고 신나서 연락했던 순간 ㅠㅜ
자석을 넣어 본 회색 시제품 안쪽

도면 앞에서 막연하던 불안이, 풀 수 있는 질문 세 개로 바뀐 거예요. 그리고 그제야 알았어요. 제가 그렇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들은, 애초에 도면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었다는 걸요.

그다음부턴 빨랐습니다. 실물이 있으니 구조 모델링도 따라 나왔고, 제조공장 분들과도 같은 걸 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손잡이 부품을 나눠 그린 구조 모델링 화면

손잡이는 사출 금형에 들어갔고, 날은 도면을 그려 스테인리스 가공 업체에 맡겼어요. 자석 업체에선 규격을 맞추고 샘플을 받아왔고, 리벳 공장에선 방법을 듣고 규격을 정했어요.

틀리지 않으려고 석 달을 헤맸는데,
일단 만들어보니 2주 만에 길이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