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좋아하는지는 늘 분명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걸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따금 꺼내본다. 그때 듣던 음악을 다시 틀면 그때의 기억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영화의 대사 한 줄에도 한참을 머문다. 몇 시간이 그냥 간다. 다음 날 피곤할 걸 알면서도 멈추기가 어렵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마음까지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좋은 건 확실한데, 그걸 옮길 말이 없었다. 좋아할수록 조금 외로웠다. 그런데도 나다운 걸 다시 만날 때마다 벅찼다.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 간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예전 같으면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을 텐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진짜 내 물건들 사이에 있을 때 그렇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여전히 헷갈릴 때가 많다. 다만 어디를 보고 가면 되는지는 조금 분명해졌다.
사람은 결국 곁에 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렇듯, 매일 무엇을 지나치느냐도 그렇다. 그래서 의지로 버티는 대신, 주변을 그렇게 만들어 두기로 했다.
집에는 내가 고른 물건과, 어쩌다 그냥 있게 된 물건이 있다.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 매일 손이 가는 물건일수록 그쪽이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아마 몇 개는 바로 보일 거다.
그런 물건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데가 현관이었다. 하루의 시작이고 마감이고, 안과 밖이 만나는 자리인데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요즘 그 자리에서 하루에 한 번쯤 작은 기쁨이 생긴다. 택배가 온다. 이렇게까지 자주 무언가 도착하는 시절은 없었다. 상자를 여는 건 나에게 선물이 도착하는 순간에 가깝다.
